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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한미 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지 20년후 고종황제가 한인들의 미국이민을 허락해 1902년 12월 22일 인천에서 첫 이민선이 하와이로 떠났고, 이것이 최초의 한인이민으로 기록 되어왔다. 그래서 2002년은 한인이민 100년을 맞이하는 해였고, 많은 기념식 및 행사가 있었다. 미주 한인 공인회계사 특히, 남가주 한인 공인회계사의 역사는 정확한 기록이 없는 관계로 언제부터 한인 공인회계사가 존재하여 서비스를 했는지 알길은 없다. 다만 남가주 한인 공인회계사 협회가 1983년 7월 설립되었기 때문에 또 설립 당시의 창립준비 위원들께서 생존해 계시기에 각종행사 서류, 신문보도 또 준비 위원들의 증언을 통하여 남가주 한인 공인회계사 협회의 역사를 정리하여 보고자 한다. 남가주 한인 공인회계사 협회 25년 기간을 세부분으로 나누었다. 첫째는 협회의 창립 및 기반을 다지는 기간으로 1983년 7월부터 1992년 3월까지이다. 이 기간에 여덟분의 회장이 협회를 이끄셨는데, 공인회계사의 이미지 구축 및 협회의 기반을 다지는 기간으로 볼 수 있다. 둘째는 1992년 4.29 폭동부터 1998년 6월까지의 기간으로 교포사회가 CPA의 중요성을 인식하였고, CPA협회의 사회적 위상 및 봉사가 제고된 시기라 하겠다. 셋째는 1998년 7월부터 2007년으로 이 시기는 협회 내부적으로 다양한 활동을 통하여 CPA 자신의 실력 향상 및 변화하는 경제사회에 대응하는 단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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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창립 및 기반확립

1983년 7월 ~ 1992년 3월 이 시기는 협회가 창립된 시기이고 또 내부적으로 회원을 늘리고 기반을 다지는 시기였다. 남가주의 최초 공인회계사가 언제부터 개업을 했는지 불분명하지만 1970년 초에 5~10명의 한인 공인회계사가 개업을 하여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1980년에 들어서 10명에서 30여명의 한인 공인회계사가 생겨나면서 서로 활발한 경쟁이 이루어졌다. 그 당시 개업했던 한인 공인회계사로는 김종관, 김성철, 박인호, 오영균, 이수정, 조용직, 김재영, 정기모, 하워드 리 씨등이 있었다. 이중에서 조용직, 오영균, 하워드 리 공인회계사들이 중심이 되어 남가주 한인 공인회계사 협회를 1983년에 결성하게 되었다. 이 때 결성한 이유는 친목도모, 경쟁완화 및 정보교환이 목적이었다. 1983년 7월 우래옥에서 창립총회가 이루어졌고, 하워드 리 공인회계사가 초대 남가주 한인 공인회계사 협회 회장으로 선임되었다. 그 당시 창립위원들은 가주 CPA 협회의 Los Angeles Chapter와 연관을 맺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한인 공인회계사들이 한달에 한번씩 세미나하는 것을 Continuing Education Credit으로 인정해달라는 요청을 하여 인정받았다. 따라서 discussion group의 이름을 Olympic-Vermont Discussion Group으로 하였다. 남가주 공인 회계사협회 2대회장은 조용직 CPA가 하셨고, 3대는 오영균 회장이 맡아서 계속적인 세미나와 친목도모를 유지하였다. 특히 CPA License가 있는 공인회계사와 License가 없는 계리사를 소비자가 혼동 하는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조용직 회장 및 오영균 회장은 후일 미주 한인 공인회계사 총연합회의 회장을 역임하였고 아직도 남가주 한인 공인회계사 협회에 많은 애정을 가지고 협조를 아끼지 않고 계시다. 신영한 4대 회장 (1986년 7월 ~ 1987년 6월) 은 한인타운 경제를 위하여 많은 활동을 하였지만 1999년 작고하였다. 1986, 87년경에 한인경제는 많이 발전하여 특히, 봉제업, 세탁소, 마켓, 리커, 무역업 등을 하는 분들을 중심으로 경제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1986~87년 당시 한인 공인회계사 수는 50~60명선으로 증가되었다. 이어 제5대는 홍길산 회장 (1987년 7월 ~ 1988년 6월) 이 역임하였다. 제6대는 김기옥 회장 (1987년 7월 ~ 1989년 6월) 이 역임하였다. 이때 1988년 10월 협회 정관이 draft되었다. 또한 1989년 2월에는 한국일보와 공동으로 대교민 소득세 세미나를 시작하였다. 제7대 헨리김 회장 (1989년 7월 ~ 1990년 6월) 은 License가 없는 Book-keeper 들로부터 차별화시켜 공인회계사의 업무와 교육, 자격등을 교민사회 및 언론에 부각시키는데 노력하였다. 제8대는 김재영 회장 (1990년 7월 ~ 1991년 6월) 이 역임하였다. 김재용 회장은 협회정관을 손질하여 채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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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PA 및 CPA 협회의 역할 중요성 인식시기

1992년 4월 ~ 1998년 6월 이 시기는 4.29 폭동을 시발점으로하여 사회적으로 CPA의 역할이 인식되었으며 사회봉사에 힘을 기울인 기간이다. 1992년 4월 29일 4.29 폭동이 발생하였다. 이때 많은 한인 비지니스 소유주들이 점포를 방화에 의하여 잃거나 건물이 파괴되거나 재고를 도난당하였다. 많은 재산손실로 실의에 빠져있는 한인교포들이 연방정부, 또는 주정부의 SBA loan 신청을 하여야 할때 남가주 공인 회계사들이 회장을 중심으로하여 교민들을 도왔다. 이 당시 회장은 장봉섭 CPA였고, Olympic 에 있는 구 라디오 코리아 뒤에서 여러명의 CPA들이 교대로 나와서 SBA 서루작성을 무료로 도와주었다. 이때 CPA들의 큰 활동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CPA에 대한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고 교민들이 장부정리, 세금보고의 중요성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1992년부터 회계학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에게 장학금 지급을 시작하였다. 제10대 최상봉 회장도 장봉섭 회장의 뒤를 이어 4.29 폭동 피해복구를 위해 교포들을 많이 도왔다. 제11대 정봉식 회장때 (1993년 7월 ~ 1994년 6월) 는 노스리지 지진 (1994년 1월) 이 발생하여 이때에도 교민들의 SBA loan 신청을 많이 도와주었다. 제12대 회장은 박정모 CPA가 역임하였다. 제13대 회장 최정실 회장때 (1995년 7월 ~ 1996년 6월) 는 한국 공인회계사회 이종남 회장을 초청하여 간담회를 가졌으며 이때 전 미주 CPA협회의 필요성이 논의되었다. 제14대 회장은 이병항 CPA가 역임하였고, 제15대 회장은 문병길 회장(작고)이 역임하였다. 특히 이병항 회장은 오영균 회장과 함께 1997년 미주 한인 CPA 총연합회를 창립하였다.

다양한 활동을 시작한 협회

1998년 7월 ~ 2007년 이 시기에는 협회장들이 회원들의 실력향상 및 친목도모를 위하여 세미나의 내실화, 행사의 다양화, 또 외부 기관과의 협조를 도모한 시기라 하겠다. 홍성하 CPA가 제16대 회장 (1998년 7월 ~ 1999년 6월) 을 역임하였는데 정관을 새로이 개졍하였고, Banker & CPA Golf Tournament를 시작하였다. 또한 CPA들간의 친목도모를 위하여 처음으로 연말 Party를 개최하였다. 제17대 김병식 회장때는 CPA협회 저널이 창간되었다. 약 30페이지에 달하는 저널에는 회원들의 article과 동정등이 실려있다. CPA Journal은 2006년까지 매년 발간되어 8번이 발간되었으며 협회 회원들의 논문과 수필등이 실려져 있고 정보교환에 많은 도움을 주고있다. 제18대 회장은 김윤한 CPA가 역임하였고 세미나의 충실화, CPA 테니스대회 시작등으로 젊은 층 회원 확중에 노력하였다. 제19대 송재선 회장은 CPA협회에 열성을 가지고 협회의 발전 및 단결에 기여하였다. 이 당시의 행사로는 장학금 수여, 교민대상 소득세 세미나 (200여명 참여), 불우이웃돕기 행사, Tennis 대회, Golf Tournament 등이 있었다. 제20대 김경무 회장때는 소득세 세미나와는 별도로 교민대상으로 현금거래 세미나를 주관하였다. 제21대 강신용 회장은 CPA들의 상속계획에 관한 정보를 위하여 Advanced Estate and Business Succession Planning Seminar 를 신설 개최하였다. 제23대 임창수 회장은 세미나의 다양화, 저널의 내용보강 등으로 내실에 기여하였다. 제24대 장두천 회장은 한인 경영인을 위한 Business Workshop Seminar를 개최하였으며 공무원 협회등 외부기관과의 유대를 강화하였다. 제25대 회장은 제인김 회장으로 최초의 여성회장이 탄생하였으며, 협회 창립 25주년 행사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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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한인 공인회계사 총연합회 탄생

1996년 뜻있는 남가주 CPA들이 모여 미주 한인 공인회계사 총연합회를 창립하였다. 전국에 있는 한인CPA들이 모여 학술교류 및 친목도모를 위함에 있었다. 1997년 1대 오영균 회장이 취임하였고, 2대 이병항 회장, 3대 조용직 회장, 4대 호민선 회장, 5대 장봉섭 회장으로 이어가고 있다. 2000년에는 한국 회계원장 김일섭 CPA를 초대하고 뉴욕, 시카고, SF, LA 등 각지 CPA 들이 모인 가운데 제1회 학술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였다. 2007년 장봉섭 회장 주관하에 100여명의 각주 CPA들이 모여 제7회 학술대회를 개최하게에 이르렀다. 특히 제7회 대회에는 한국의 서태식 공인회게사 협회회장, 문택곤 부회장등이 참석하였다. 전 미주에 흩어져있는 한인 CPA들이 일년에 한번씩 만나 학술교류를 하고 친목도모도 하는 것은 서로의 발전을 위해 또 증대하는 CPA의 역할에 대응하는 좋은 network이라 하겠다.

교포들의 경제발전과 한인 공인회계사들의 역할

2007년 현재 남가주 교민이 70만이 넘는다고 한다. 짧은 기간동안 부의 축적도 많이 이루어졌다. 이와같은 경제발전에는 뒤에서 묵묵히 일한 한인 공인 회계사들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한다. 모든 경제활동에는 회계와 세무, 경영계획, 재정계획에 바탕을 둔 CPA들의 조언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고객들이 가장 중요한 결정을 할때 신뢰하고 의논하는 대상이 공인회계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남가주 한인 공인회계사 협회가 25년이 되었고 회원이 300여명에 달한다. 앞으로 한미 FTA, 한국인 Visa 면제, 한국의 대미 투자 자유화등으로 남가주 한인 경제는 더욱 발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남가주 한인 공인회계사도 이에 대비하여 자기발전 및 network 형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러한 network 구축에 남가주 한인 공인회계사 협회가 중추적인 역할을 해야한다. 또한 개별사무실 위주보다는 한인타운에도 대규모 회계법인이 많이 생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후배회계사의 향성, 인력의 체계적 교육 및 관리도 중요한 과제이며 미국 주류 회계법인의 정보 및 훈련 시스템도 도입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이와같은 새로운 노력이 변화하는 교민경제, 나가서 Global Economy에 대비하는 길이다.